대학사계

저는 산을 좋아합니다. 그렇다고 100대 명산을 쫓아다니는 타입은 아니고 같은 산에 자주 갑니다. 세상 모든 사물에 공감하기보다는 그냥 익숙한 환경에서 와인 한잔하는 편안함을 선호하는 ‘INTP’라 그런가 봅니다. 그렇다고 어디 처박혀 한 가지에만 집중하는 강인한 성격도 못되어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하면 늘 솔깃해하고 궁금해합니다. 한마디로 귀가 얇은 거지요. 그래서 한 주에 한 번은 동네 산을 오르면서 쌓인 생각을 정리합니다. 일부러 노력 안 해도 걷다 보면 파편 같은 아이디어가 저절로 좌우 정렬이 되면서 구체적 명제로 요약되지요.  

가끔은 큰 산에 가기도 합니다. 대체로 첫날은 힘들게 산에 오르고 다음 날 아침에는 근처 산사나 바닷가 등에서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갖는 호사를 누립니다. 평일 아침 산중 암자에 들어 긴 호흡을 하고 나면 머리가 리셋되는 ‘텅 빈 충만’을 느껴서 좋고, 바람이 별로 없는 아침 바다는 맨발로 걷는 것 자체가 명상입니다. 가끔 예외가 있긴 했지만 예전 나의 단골은 설악산이었습니다. 다들 설악의 가을 단풍을 예찬하지만 나의 최애 아이템은 오월 초순 오색으로 오르는 길의 파스텔 색깔, 한겨울 눈 쌓인 ‘삼각김밥’ 능선, 그리고 안개 자욱한 한계령 언덕길입니다. 

그러던 어느 해 베짱이처럼 아이디어만 노래하지 말고 진득하게 책을 제대로 써보자 결심했습니다. 누구나 내기를 할 때는 이길 확률에 비례해 게임의 금액(stake)을 높이지요. 저 역시 나 자신과의 내기에 ‘설악산’을 걸었습니다. 즉, 책 마치기 전에 여기 안 간다 약속했습니다. 빠르면 몇 달, 길어야 일 년쯤 일 텐데…

지난 8년은 주로 한라산을 다녔습니다. 그전에도 행사나 가족 여행 등으로 제주도는 몇 번 다녀왔지만 혼자 제주를 처음 간 것이 2014년 2월 중순이었습니다. 당시 올레길이 막 인기가 높아질 무렵이라 나도 ‘남원 큰 엉’을 관통하는 5번인가 하는 코스를 택해 걸었습니다. 바닷가 벼랑길은 그냥 걷거나 다음 생으로 향하는 양자택일이라 혼동이 없었는데, 마을 길로 들어서면 헷갈리기 일쑤였습니다. 덕분에 낯선 마을 어귀의 소박한 동백꽃을 즐길 수도 있었지요. 제주에 가면 동백나무를 잔뜩 모아둔 곳이 여럿 있는데 저는 이런 인위적인 데는 잘 안 갑니다. 요즘은 올레길보다 곳곳에 숨어 있는 다양한 숲길을 더 자주 찾습니다. 

제주도에는 큰 절이 없습니다. 그래서 보통 첫날은 산에 가고 다음 날은 숲길을 걷는데 자주 가다 보니 한라산 신령님을 사귀게 되었습니다. 설악산도 못 가고 대타로 자신을 찾아온 나를 가엽게 여긴 그분은 선물로 ‘파킹운’을 내려 주셨습니다. 이후 아무리 혼잡한 지역을 가도 누군가 내 앞에서 차를 빼줍니다. 우리 식구들이나 방 조교들도 올해는 꼭 책을 쓴다는 내 말은 믿지 않아도 내 파킹운은 인정합니다. 한두 번이 아니라 거의 모든 상황에서 먹히는 것을 직접 봤으니까. 

그러다 재작년 봄 한라산에 갔을 때 신령님께 파킹운을 재물운으로 좀 바꿔 달라 했습니다. 신령님이 웃으시며 여기서 헤매지 말고 빨리 서울로 돌아가라 했지요. ‘하이(hi)’ 하고 손을 흔들며. 사실 그 무렵은 코로나나 막 시작됐던 때라 확진자 한 명이 다녀가면 백화점, 호텔, 대형마트가 며칠씩 문을 닫던 때였습니다. 원래 두 밤을 자려 했는데 뭔가 감이 이상해 표를 바꿔 서울에 왔습니다. 그다음 날 제주에서 처음 확진자가 나왔는데 자세히 보니 내가 묵으려던 한라산 기슭에 있는 호텔이었습니다. 확진자가 프론트 직원이라 아마 갔으면 나도 걸렸을 거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이어서 정말 아찔했었습니다. 

역시 신의 세계는 다르다 여기며 감탄했는데 문득 신령님이 헤어질 때 ‘바이’ 대신 ‘하이’라고 한 게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주식 힌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이닉스’ 였지요. 주식투자를 했다 하면 실패해 포기한 지 10년도 넘어 계좌도 휴면이라 그냥 포기했지요. 두어 달 후 다시 한라산에서 신령님을 뵈니 주식 샀느냐 묻더군요. 아니라 했더니 화를 내며 사라지셨습니다. 이후 파킹운도 사라졌습니다. 저도 말 안 듣는 제자가 밉습니다. 

혹시 해서 주식시세를 보니 하이닉스가 두 달 만에 30% 넘게 올랐더군요. 반성하며 울고 있었는데 (금도끼 은도끼 우화처럼 신령님은 우는데 약합니다) 문득 신령님이 헤어지며 한 욕이 떠올랐지요 "씨~젠장". 아, 이게 욕이 아니라 또 다른 힌트였구나. 뭐 하는 회사인 줄도 모르며 대충 비슷한 이름 몇 개 찾아보니 모두 코로나 관련 바이오 회사였습니다. 그냥 한번 믿어 보자 하고 소박한 원금으로 몇 주 샀지요. 그냥 신령님의 영험함 테스트였지요. 제게 찾아오는 학생들도 각종 방식으로 저를 테스트한다는 것 잘 압니다. 알면서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별로 숨길 것도 없기 때문이지요. 재산이 많아야 고민이 많은 법.  어쨌거나 이 주식은 2-3개월 만에 세 배 가까이 올랐습니다. 

누구에게나 이런 믿기 힘든 순간이 있습니다. 이런 재미도 없으면 사는 게 퍽 지루하겠지요. 물론, 길게 보면 이런 요행은 자만에 빠지게 하는 위험이기도 하지요. 로또 탄 사람들이 불행해지고, 자원 많은 나라가 생산성 향상에 소홀히 하며 나락에 빠지는 것(자원의 저주)은 흔한 경험입니다. 나 역시 그냥 적당한 선에서 만족했으면 되는데 ‘나의 신기’를 믿고 원금을 잔뜩 불려 다른 업종을 사보았습니다. 결과는 폭망. 신령님 주식에서 벌었던 것 다 까먹었습니다.

얼마 후 다시 한라산에 올라 잘못했다 용서를 구했더니 측은하다 여기셨는지 파킹운은 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작년 봄 코로나가 한창일 때 신령님을 다시 졸랐습니다. 그랬더니 뭔가 웅얼거리며 사라지셨습니다. 모든 문제는 겉의 증세를 보지 말고 진짜 원인을 알아야 한다, 뭐 이런 말씀.  이게 경제학이지 무슨 주식힌트냐하며 실망했습니다. 두 가지 사건이 동시에 혹은 차례로 발생한다고 하나가 다른 하나의 원인이 아닐 수 있습니다. 소위 Non Sequitur의 오류지요. 경제학이 과학인 것은 ‘인과 관계’를 공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단순한 증상을 두고 원인처럼 말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경제가 고도성장을 한 근거로 ‘수출주도’ ‘정부주도’ 란 말을 많이 하는데 저는 이것을 성공 요인이라 보지 않습니다. 개도국 중 수출 원하지 않는 나라 없고, 정부가 주도하지 않는 나라 없습니다. 우리가 수출에 성공한 것은 다른 원인의 증상일 뿐이지요. 무엇이 수출을 많이 하게 만든 경쟁력의 원천인지를 보아야 진정한 인과 관계를 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과거의 우리 정부가 어떤 측면에서 다른 개도국과 차별화를 했는지를 보는 것이 필요하겠지요.

어쨌거나, 신령님이 “돈도 없고, 투자 재능도 없는 주제에 운에 기대지 말고 네가 게을리하는 경제 공부나 제대로 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여겼습니다. 문득 예전 유학 시절 읽었던 마르크스(Karl Marx) 에세이집의 한 구절이 떠 올랐습니다. “경제학자는 자신은 1페니도 가지고 있지 않은 주제에, 1페니를 가진 친구에게 어드바이스해 그 1페니마저 잃게 하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미국에서 강의할 때 학생들에게 이 얘기를 해 주면 다들 즐거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들 대부분은 어차피 경제학 대학원 대신 MBA나 로스쿨 갈 친구들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신의 세계는 결코 1차원은 아니지요. 집에 돌아와 신령님 말씀을 생각하다 뭔가 떠오르는 테마가 있어 주식을 다시 샀습니다. 딱 2개월에 3배 오르더군요. 이번에는 주변에 자랑까지 해서 따라 산 사람도 있습니다. 그 또한 2배 정도 올랐습니다. 사실, 이번에야 말로 같은 실수 반복하지 말고 바로 팔았어야 했는데 사람 욕심이.. 다시 몇 개월이 지나 결국 본전으로 돌아왔습니다. 

머릿속으로는 해답을 알지만 잘 안되는 것은 ‘불확실성’이 주는 묘한 기대감 때문이지요. 이후 주식은 다시 포기했지만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한때나마 정말 내가 택한 경마주가 역전승을 거두는 식의 피가 치솟는 환희도 느껴 봤습니다. 뭐, 살다 보면 이 정도 일탈은 실보다 득이 더 클 수 있습니다. 가끔은 흥분도 하고 욕도 하고 술도 먹고 낯선 거리서 헤매기도 해야 새로운 시작의 실마리가 떠오를 수 있습니다.  

사실, 새해 첫 글로 뜬금없는 이 얘기를 왜 하는지 저도 궁금합니다. 그냥 누구나 첫 시작은 희망으로 포장하고 싶은 것이겠지요. 

그러고 보니 작년에는 한라산을 봄에 한번 다녀온 것이 다였습니다. 한라산 중턱 삼나무, 편백나무 숲을 한두 시간 거닌 기억이 지금도 새롭습니다. 신령님 볼 염치도 없고, 그나마 되돌려주신 파킹운에 감사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다 작년 늦가을 지리산에 갔습니다. 월요일은 내가 힘들 때 가끔 가는 화엄사에 들렀고 절 뒷길을 따라 연기암에 올라 단풍 사이로 저녁노을이 깃든 지리산 능선을 보았습니다. 몇 해 전 저희 팀이 단체로 화엄사에 워크숍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추진 중인 책 작업을 무리해 마쳐야 하냐 마냐로 고민이 있었습니다. 새벽에 혼자 예불 보러 절에 들렀는데 그 찬란한 여명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내친김에 걸어서 화엄사가 처음 생긴 암자로 걸어 올라갔습니다. 이후 마음은 평온해졌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책 작업은 계속 연기됐습니다. 나중 보니 그 암자 이름이 ‘연기암’ 이었습니다. 이후 이곳만 들리면 작업 일정을 미룬다고 조교들은 가지 말라 하는 곳입니다.  

어쨌거나 다음날인 화요일, 새벽 5시에 출발해 1시간 반 어둠 속으로 산을 올라 노고단 일출을 보았습니다. 설마 연초도 아니고 관광 철도 아닌 11월 중순 스산한 평일 새벽에 이 짓을 하는 미친놈이 더 있을까 했는데 열 명 남짓 더 있더군요. 지리산 일출은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본다는데… 아무튼 구름이 좀 있었지만 해 뜨기 전 은은하게 물들어 가는 새벽노을은 그 자체로 영감이었습니다. 당시 방영했던 드라마 ‘지리산’에도 나오듯 지리산은 영험한 산으로 무당의 집결지로 꼽힙니다. 한라산처럼 흰 수염의 신령님은 보이지 않았지만 마음은 너무 편해 아쉽지 않았습니다. 그 후 돌아와 2주 정도에 미친 듯, 홀린 듯 지지부진하던 책의 윤곽을 잡고 초고를 마쳤습니다. 세상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힘이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잘 모를 뿐. 

올해가 호랑이 해랍니다. 지난해 겨울, 책 초안 마치며 어마어마한 백호가 날 노려보는 꿈을 꾸었습니다. 근데 그 눈빛이 어디서 본 듯했습니다. 지난가을 지리산 화엄사를 떠나기 전 본 부처님 눈빛이 교차됐습니다. 흥분한 제가 이 백호(white tiger) 꿈 얘기를 가족들에게 했더니 올해는 ‘흑호(black tiger)’의 해라고 웃더군요. 꿈 깨라는 말이지요.

오래 기다렸던 제 ‘보이지 않는 책(invisible book)’ 1권이 2월 하순 세상에 나옵니다. 예정보다 많이 늦어졌지만 그만큼 더 다듬어진 제 생각이 담겨있어 만족합니다. 학생들 어렵게 알바해 번 돈을 책 같지도 않은 교재 써서 뜯어가는 부류들을 겉으로는 마땅치 않아 하면서 속으로는 부러워했던 내가 드디어 꿈을 이룹니다. 

일체유심조. 근심도 걱정도 희망도 위안도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새해, KCEF를 방문해 주신 여러분들 마음에 꿈과 자신감이 가득하길 빕니다. (신년사 22.01.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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